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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여기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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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제주요양원 작성일20-02-19 14:57 조회5,9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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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까지도 신입사원 같았던 제가 어느새 남제주요양원의 7년차 직원이 되었습니다.
  첫 출근을 하고 이주일쯤 지났을까 퇴근길에 만난 한 선생님이 “할 만하세요?”라고 제게 물으셔서 “네, 재밌어요”라고 답을 한 기억이 납니다.
  동료들의 배려와, 치매를 앓으면서도 신입사원을 알아보고 살갑게 대해주시는 어르신들의 따뜻함을 느끼면서 퇴근길이 그다지 힘들다거나 지치지 않았으니까요.
  밤새도록 어르신들을 돌보고 새벽까지 종종걸음 치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퉁퉁 부어도 밤새 아무사고 없이 편안한 아침을 맞는 어르신들을 뵈면 한 밤의 고단한 마음이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기도 하니까요.
  그러다가 몇 개월이 지났을까 한참 선배되는 동료 한 분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던졌습니다. “이 일은 어찌, 하면 할수록 힘이 든다”

  더운 여름날 어르신들 더울까 에어컨을 켰다가 어느 한 분이 기침을 하면
조바심에 에어컨을 끕니다. 옷 갈아입혀 드리다 등에 발진이라도 보이면 ‘많이 더우셨구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야간당직을 하다 조용하고 적막한 한밤중에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일어나 방을 찾아 어르신의 상태를 살피는 일, 밤새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어스름히 날이 밝아오면 깨우고 씻겨 단장해 드리고 아침 배식을 준비하는 일, 그렇게 열심히 하다 잠깐 사이에 작은 사고가 생겨 어르신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밤새 고생했던 것들이 허사가 되는 것 같아 무력감과 회의가 갑자기 찾아옵니다. 그 때 비로소 12년차 선배가 했던 “하면 할수록 힘이 든다”라는 말이 뼈저리게 와닿아 마음이 무척 무거워지지요.

  그런데도 저와 우리 직원들은 쉽사리 이 일을 그만두고 어르신들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 어르신들을 맡긴 하나님에 대한 사명감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어르신들이 너무 좋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말을 쉬지 않고 중얼거리시는, 시각장애와 중증 치매를 동시에 앓고 계시는 어르신이 어느날 아침 얼굴을 씻겨드리고 머리를 곱게 빗겨드리니 뜬금없이 “고맙습니다”라고 나지막히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한 마디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오고 힘든 하루의 고단함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원장님은 월요일 아침이면 아침 식사 전 방송으로 기도하십니다. 
“우리어르신들 아침식사 잘 하시고 건강하게 해 주시고 오늘 하루도 아무사고 없이 편안하게 해주세요” 직원들은 모두 “아멘” 합니다. 모두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겠지요.

  직원 회의 때 원장님이 읽어주셨던 글 한 줄이 문득 생각납니다. 침상에 누워 말조차도 할 수 없는 어르신을 대신하여 누군가 쓴 글.
  ‘여보게!! 이렇게 누워 말은 할 수 없어도 난 자네 말을 다 듣고 있다네...’

  저는 오늘도 마음으로 얘기하시는 우리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며 어르신들 곁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 서있어야 할 그 자리에 오늘은 제가 서있기로 했습니다.

이옥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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